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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울지마 톤즈 정보 줄거리 꽃처럼 향기로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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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영화 울지 마 톤즈는 꽃보다 향기 나는 인생을 살다 간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통해 누구를 위하여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영화 정보와 줄거리를 소개한다. 

     

     

     

    영화 울지 마 톤즈 정보

     

    영화 울지 마 톤즈는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세례명은 요한이다. 그는 남수단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가 행한 것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다. 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다른 사람을 위해서 희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영화다.

     

     

     

     

    이 영화는 2010년 4월 11일에 KBS 스페셜에 방영된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방송 내용이 교육적이었으며 호응도가 높아서 극장판용으로 재편집되어 영화관에서 상영하게 되었다.

     

    이 영화가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단 몇 개의 상영관에서만 개봉하였다. 하지만 누적 관객수는 44만 3천 명을 넘었다. 종교 영화 중에 최대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또한 다큐멘터리 영화 부분에서도 4번째 순위를 기록하는 흥행을 하였다. 혹자는 가톨릭 신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아서 순위가 높은 게 아니냐고 하였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은 일반 극장이 아닌 성당이나 문화센터에서 특별 상영한 것을 많이 보았다. 따라서 영화관 관람객은 가톨릭 신자자 아닌 대부분 일반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불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할까 봐 보여주는 것을 망설였다는 대한불교 조계종 한 승려의 농담이 이 영화의 영향력을 충분히 설명하고도 남는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울지마 톤즈 줄거리

     

    영화 울지 마 톤즈는 아프리카 수단 남쪽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살았던 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2010년 2월에 톤즈라는 작은 마을에 한 무리의 밴드가 행진을 했다.

     

    그들은 남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였다. 그 밴드 맨 앞줄에는 한 남자의 사진을 소년들이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

     

    사진 속 그 남자는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사진 속 남자를 토즈의 아버지였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죽었다는 소식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울었다.

     

    눈물을 보인 부족은 딩카족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수단은 한반도와 같이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어 오랜 내전을 겪고 있었다. 오랜 내전이 남긴 상처는 분노와 증오, 가난과 질병이었다. 딩카족은 전사였다. 그들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였다.

     

    하지만 이 사진 속 남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흐르는 눈물을 막지는 못했다. 이 사진 속 남자가 바로 고 이태석 신부이다.

     

    그는 마흔여덟의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한참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였지만 톤즈 마을에는 그가 죽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고 이태석 신부는 톤즈 마을의 아버지였다. 그는 의사였다. 때로는 선생님이기도 했고, 지휘자였으며 건축가였다.

     

    이태석 신부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쳐 톤즈 마을 사람들을 사랑했고 헌신하였다. 그가 만든 톤즈 브라스 밴드 총 대신 악기를 들었다.

     

    그리고 이 밴드는 고 이태석 신부의 초상화를 들고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꽃처럼 향기로운 인생 

     

    영화 울지 마 톤즈에는 꽃처럼 향기로운 인생을 살다 간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이 소개되었다. 나이 48세는 죽기에는 이른 나이다.

     

    아닌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죽었다. 이태석 신부는 한창 꽃향기를 발하는 중에 꺾여 떨어진 한송이 장미꽃과 같았다.

     

    그는 톤즈 마을에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했던 의사였다. 하지만 장미꽃에 가시가 있듯이 그의 몸에도 가시가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대장암에 걸렸다. 그리고 2010년 1월 14일 하나님 곁으로 갔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슈바이처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영화 울지 마 톤즈처럼 고 이태석 신부는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가 살다 간 꽃처럼 향기로운 인생은 앞으로도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어 세세토록 전해질 것이다. 다시 한번 고 이태석 신부의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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